시험과 입시교육 대신에 자율수업과 논문쓰는 대안학교다.
친구들을 만나도 묻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묻는다. "공부는 잘해?" "몇 등이야?" "대학은 어떻게 할 거니?" 이어지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하느냐에 따라 인정받기도 하고 또 무시당하기도 한다. 누군가 나에게 공부를 잘하느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나는 시험을 잘 보는 편이 아니고, 성적을 받아본 경험도 거의 없다. 기억력이 좋지 않기에 암기를 잘 못하고, 정해진 답을 맞히는 것엔 정말 형편없다. 그렇기에 나는 공부를 못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기준에 빗대어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크게 낙심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내가 일본어를 공부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미련해도 그렇게 미련한 공부법이 없더란다. 그냥 책 한 권 정해놓고, 들입다 외워버리니까. '저렇게 공부하면 바보라도 다 하겠네.' '7번 읽기 공부법'을 읽고 느낀 점. 역시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그냥 공부하는 순간의 괴로움을 견디고, 그 성과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게 다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등가교환이라는 걸 모른다. 그냥 공부는 괴롭고 끝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습법의 저자가 공통으로 하는 얘기, 하면 분명히 된다. 이걸 몸으로 익히는 게 진짜 공부다.
과학이나 인문학은 설명해주거나 원리를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언어는 가르친다고 무조건 느는 게 아니다. 본인의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절대 늘지 않는다. 오히려 굳이 학원에 가지 않고 혼자 연습만 열심히 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 영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학원이 가장 잘 안다. 그렇기에 그들은 초등생에게 영어 시험 보는 요령을 가르친다. 그걸로 부모들을 겁박한다. '아직 한번도 토익을 안 봤다고요? 누구네 애는 벌써 토익이 몇점인데'
요즘 저는 짬만 나면 하루 15분씩 책을 낭송합니다. 낭송은, 단순히 소리내어 읽는 낭독은 아니구요, 그렇다고 책을 완전히 외우는 암송도 아닙니다. 정좌하고 앉아서 논어나 금강경 같은 동양 고전을 소리내어 읽습니다. 그러다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있으면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책을 보고 소리내어 읽습니다. 이렇게 몇번을 반복해서 흔들림 없이 글이 소리가 되어 나오면, 즉 귀에 들리는 소리가 낭랑하게 자리를 잡으면,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